Recode

날개

박다소니 2025. 7. 6. 16:54

흑백 단편영화를 보는 느낌으로 읽었음. 

한줄 한줄을 제대로 이해하고 읽고자 했을 때는 어려워서 관뒀는데, 영화 보듯 읽으니 술술 읽힘.

하지만 무언가 동떨어진 느낌이 들었음.

추천추천🪽

 


 

*

말하자면 나는 내가 행복되다고도 생각할 필요가 없었고 그렇다고 불행하다고도 생각할 필요가 없었다. 

 

*

십팔 가구에 각기 벌러들은 송이송이 꽃들 가운데서도 내 아내는 특히 아름다운 한 떨기의 꽃으로 이 함석 지붕 밑 볕 안 드는 지역에서 어디까지든 찬란하였다. 따라서 그런 한 떨기 꽃을 지키고 ——아니 그 꽃에 매어달려 사는 나라는 존재가 도무지 형언할 수 없는 거북살스러운 존재가 아닐 수 없었던 것은 물론이다.

 

*

나는 어디까지든지 내 방이 ——집이 아니다. 집은 없다—— 마음에 들었다.

 

*

될 수만 있으면 이 무의미한 인간의 탈을 벗어버리고도 싶었다.

나에게는 인간사회가 스스로웠다. 생활이 스스로웠다. 모두가 서먹서먹할 뿐이었다.

 

*

내 비록 아내가 내게 돈을 놓고 가는 것이 싫지 않았다 하더라도 그것은 다만 고것이 내 손가락에 닿는 순간부터 고 벙어리 주둥이에서 자취를 감추기까지의 하잘것없는 짧은 촉각이 좋았달 뿐이지 그 이상 아무 기쁨도 없다.

 

*

나는 장지를 열고 아내 방으로 가서 그 돈 이 원을 아내 손에 덥석 쥐어주고 그리고 아내는 드디어 아무 말도 없이 나를 자기 방에 재워주었다. 나는 이 기쁨을 세상의 무엇과도 바꾸고 싶지는 않았다.

 

*

나는 이불 속에서 좀 울었나보다. 돈이 왜 없냐면서.......

 

*

나는 아내의 이름을 속으로만 한번 불러보았다. <연심이!> 하고.

 

*

단 오 분이 못 가서 나는 그만 귀찮은 생각이 버쩍 들면서 심술이 났다. 나는 주머니에서 가지고 온 아달린을 꺼내 남은 여섯 개를 한꺼번에 질겅질겅 씹어 먹어버렸다. 맛이 익살맞다.

 

* 

그때 내 눈앞에는 아내의 모가지가 벼락처럼 내려떨어졌다.

아스피린과 아달린.

 

*

우리 부부는 숙명적으로 발이 맞지 않는 절름발이인 것이다. 내나 아내나 제 거동에 로직을 붙일 필요는 없다. 변해할 필요도 없다. 사실은 사실대로 오해는 오해대로 그저 끝없이 발을 절뚝거리면서 세상을 걸어가면 되는 것이다. 그렇지 않을까?

그러나 나는 이 발길이 아내에게로 돌아가야 옳은가 이것만은 분간하기가 좀 어려웠다. 가야하나? 그럼 어디로 가나?

 

*

날개야 다시 돋아라.

날자. 날자. 한번만 더 날자꾸나.

한번만 더 날아보자꾸나.

 

 

-이상